지난주, 데미스 하사비스가 구글 딥마인드 CEO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이 발표를 계기로, 지난 몇 달간 따로 보도되던 사건들이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글은 2018년에 '무기와 감시에 쓰이는 AI는 만들지 않겠다'는 문구를 공개 원칙에 넣었는데요. 2025년에 그 문구를 지웠고, 2026년 4월에는 국방부가 제미나이를 기밀 작전에도 쓸 수 있도록 계약을 넓혔습니다. 그리고 5월, 런던 딥마인드 직원들이 노조 인정을 요구하고 나섰지요. 노조 결성이 성사된다면 프런티어 AI 랩** 최초의 공식 노조가 되는데요. 무슨 일인지 좀 더 알아볼까요?
*회사를 떠난 건 아니고, 딥마인드 의장과 알파벳 최고과학자를 맡습니다.
**오픈AI나 앤트로픽처럼 최첨단 모델을 만드는 소수의 기업을 뜻합니다.
7년 전에 한 약속
구글이 무기와 감시에 사용되는 AI를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처음 내놓은 건 2018년, 프로젝트 메이븐 때문이었습니다. 드론이 찍은 영상을 AI로 분석해 물체를 식별하는 국방부 사업이었는데요. 이 계약이 알려지자 구글 직원 수천 명이 반발했고 일부는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결국 구글은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고, 대신 AI 원칙(AI Principles)이라는 공개 서약을 발표했습니다. 회사가 어떤 AI는 만들고 어떤 AI는 만들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밝히는 문서인데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회사가 스스로 그은 선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있습니다. 서약 안에는 '우리가 추구하지 않을 AI 응용'이라는 항목이 따로 있었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이 주된 목적인 무기, 국제 규범을 위반하는 감시 기술이 명시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2025년 2월, 구글은 원칙을 개정하면서 이 문구를 뺐습니다. 대신 민주주의 국가가 AI 개발을 주도해야 한다는 기조와 함께 '적절한 인간 감독을 시행한다'와 같은 폭넓은 표현이 추가됐는데요. 이 개정 발표문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이 하사비스였습니다. 포춘지에 따르면 당시 다수의 엔지니어는 회사가 윤리적 약속에서 물러섰다고 보고 반발했고, 이듬해 시작된 노조 움직임의 싹이 되었습니다.
거부권 없는 계약이라고?
앞서 말한 adapter revision(어댑터 리비전)은 MinT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입니다. 이는 특정 시점에 고정된 LoRA 어댑터 버전인데요. 평가할 때도, 모델이 실제 답변이나 행동을 생성하는 rollout을 만들 때도, 온라인 서빙을 할 때도, 또 문제가 생겨 이전 상태로 되돌릴 때도 이 고정된 리비전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 행동을 내는 확정된 LoRA 파일'입니다.
하지만 어댑터 파일만 있다고 운영이 되지는 않겠지요? 이 어댑터가 어떤 기본 모델과 호환되는지, 어떤 설정으로 학습되었는지, 최신 학습 상태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rollout 기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리비전들이 서빙 가능한 상태인지도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MinT는 이런 정보를 policy record, 즉 정책 레코드에 저장합니다.
MinT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두 개념, 어댑터 리비전과 정책 레코드가 중요한데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댑터 리비전은 행동을 담은 실행 단위이고, 정책 레코드는 그 행동을 재현, 학습, 평가, 서빙, 그리고 롤백하기 위한 관리 상태입니다. 이 구분 덕분에 MinT는 수많은 모델 버전을 전체 체크포인트가 아니라 작은 어댑터와 메타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본문 속 발언이 담긴 키르쉬의 트윗. 출처: X @BlackHC
'앤트로픽'이라는 선례
여기서 잠깐, 같은 조건을 놓고 벌어진 앤트로픽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2025년 7월, 앤트로픽은 국방부와 계약하면서 정부가 자사 이용정책을 지키는 조건을 달았는데요. 국방부는 이를 다시 협상하며 '모든 합법적 목적'에 제한을 두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앤트로픽이 국내 대량감시와 완전 자율무기 두 가지를 끝내 양보하지 않자, 2026년 2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기관 전체에 사용 중단을 지시했고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리스크로 지정했습니다.
앤트로픽을 맹렬히 비난하는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 일부 중략하였다. 출처: X @SecWar
이와 같은 조치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성국 연계 기업에 주로 쓰는 방식이고, 미국 기업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앤트로픽은 소송으로 맞섰고 3월 26일, 법원이 집행을 막는 예비적 금지명령을 냈습니다. 국가안보보다 처벌이 목적으로 보인다는 판단이었지요. 최종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오픈AI와 xAI가 유사한 계약을 맺었고 4월에 구글이 합류했는데요. 구글은 이 조건을 거절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본 상태에서 결정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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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계약 협상이 알려지자 600명이 넘는 구글 직원이 서명을 모아 피차이에게 기밀 AI 계약을 거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서한이 전달된 직후 계약 체결 소식이 나왔지요. 구글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고, 오히려 국가안보를 지원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서명이 통하지 않자 직원들은 노조를 만들어 같은 요구를 다시 들이밀기로 합니다. 요구 사항은 미국 국방부와 이스라엘군이 자사 AI를 쓰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고, 여의치 않으면 시위나 핵심 제품 개발 거부까지 검토하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구글은 노조를 교섭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영국 조정기구 ACAS를 통해 협의하자고 했는데요. 회사가 노조를 자발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법으로 정해진 절차를 하나씩 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립니다. 이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한편 올해 6월, 딥마인드 AI 안전팀에서 2년 넘게 일한 알렉스 터너가 이 계약을 이유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구글이 계약서에 서명을 했을 때, 자신의 양심이 '놉(nope)'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는데요. 추가로 공식 사임 글에서는, 25쪽짜리 계약 대안을 만들어 하사비스에게 직접 보내고 250여 명의 서명을 모아 당시 최고과학자였던 제프 딘에게 나서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딘은 앤트로픽을 지지하는 법정 의견서에는 서명했지만, 계약을 막지는 않았지요.
알렉스 터너의 공식 사임 글. 출처: 터너의 블로그
구글 본사와 노조의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양측은 교섭 단위 범위를 두고 이미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요. 구글은 성실히 교섭하겠다는 입장이지만, 8월 5일에 일어난 인사 발령이 변수로 보입니다. 하사비스가 물러난 자리에 후임 CEO 없이 CTO였던 코라이 카부쿠오글루(Koray Kavukcuoglu)가 SVP(Senior Vice President)로 피차이에게 직접 보고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지요. 일부 직원은 미국 측 경영진이 협상에 덜 우호적일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 이번 사건의 상당 부분은 익명 증언과 당사자 발표에 기대고 있어, 사실관계가 달라질 여지도 있습니다.
딥마인드 직원들이 공개서한에서 멈추지 않고 노조까지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2018년에는 공개서한과 사직만으로 계약을 되돌릴 수 있었는데 2026년에는 600명 서명으로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그래서 다른 수준의 조직화가 필요해졌다는 주장이지요. 프런티어 AI 랩들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회사가 아니라 사명(mission)으로 설명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채용에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하지만 사명의 내용이 바뀌었고, 구성원들은 바뀐 사명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바뀐 사명이 또 무엇을 바꿀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조금 앞섭니다.


